오다 노부나가, 오케하자마桶狭間 전투에서 승리. 당시의 하카타는?
1560년 오다 노부나가는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를 토벌하고 주변 국가를 평정하여 교토로 진출하게 되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때 규슈 또한 전국시대의 큰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오닌, 분메이의 난(1467~1477) 이후 약 100년 간을 전국시대라 합니다만 규슈에서는 무로마치 막부의 영향이 닿기 어려워 남북조의 동란으로부터 계속해서 전란이 이어졌습니다. 막부가 규슈를 통치하기 위해 마련한 규슈탄다이(九州探題, 규슈와 이키, 쓰시마 두 섬의 방위와 외국 사신의 응접을 맡았던 벼슬)는 15세기 초엽에 쇼니 씨와의 대립에서 힘을 잃어 탄다이 시부카와渋川 씨를 지원하는 형태로 스오 야마구치周防山口를 본거지로 하는 오우치大内 씨가 규슈로 진출하여 지쿠젠筑前, 부젠豊前 양국을 통치, 히젠肥前까지도 그 영향이 미쳤습니다. 이로부터 북부 규슈의 정세는 오우치, 시부카와 씨와 오토모大友, 쇼니少弐 씨의 두 세력이 대립하는 상황으로 바뀝니다.
계속되는 두 세력의 대립은 약 10년에 걸쳐 새로운 체제로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가장 큰 원인은 강력한 세력이었던 오우치 씨가 멸망한 것이었습니다. 1550년 오우치 요시타카大内義隆가 중신 스에 하루카타陶晴賢의 모반으로 인해 자살을 하게 되고 후계자로서 오토모 요시시게(大友義鎮, 소린宗麟)의 친동생인 요시나가義長가 받아들여지게 되나 1555년 이쓰쿠시마厳島 전투에서 하루카타가 패배하여 죽고, 2년 후인 1557년 요시나가 또한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에게 공격을 당함으로써 사실상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토모 씨는 서서히 세력을 넓힙니다. 오우치 씨 멸망 후 지쿠젠, 부젠, 히젠 세 나라에서 전란이 격화되어 쇼니, 시부카와 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며 1559년에는 오토모 씨와 적대시하던 히젠의 쓰쿠시 고레카도筑紫惟門가 하카타를 습격하여 불바다가 되고 맙니다. 오토모 씨는 같은 해 말까지 그 세력들을 압도, 이전부터 통치하던 분고豊後, 지쿠고筑後, 히고肥後와 더불어 북부 규슈 6개국을 지배하게 됩니다. 전쟁 후 오토모 씨는 하카타 부흥의 일환으로 미카사御笠 강의 흐름을 변경하여 남쪽으로 보슈보리房州堀(해자)를 만들었습니다. 이로써 하카타는 주위가 물로 둘러싸여 방어성이 높은 도시로 변모하였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저희 박물관 소장의 고문서를 파헤치며 전국시대에 전환기를 맞이한 하카타의 역동적인 변화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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